서울탐방 66

서울, 성수동 공장이 예술?

서울, 성수동 공장이 예술?서울에서 요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동네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성수동을 빼놓기 어렵습니다.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카페가 들어서고, 패션 브랜드와 전시공간이 생기고, 주말이면 새로운 팝업스토어를 찾아 사람들이 골목을 걷습니다.그런데 성수동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서울, 성수동 공장이 예술?”지금의 성수동은 처음부터 문화와 예술의 동네였던 것이 아닙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공장과 제조업, 그리고 수제화 산업에서 시작해야 합니다.1. 성수동은 처음부터 ‘핫플’이 아니었습니다오늘날 성수동을 떠올리면 카페, 패션, 디자인, 팝업스토어가 먼저 생각납니다.하지만 도시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성수동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고, 제조업을..

서울탐방 2026.09.18

대학은 없는데 왜 대학로 ?

대학은 없는데 왜 대학로일까? 서울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된 이유서울 대학로에 가보면 조금 이상한 질문이 생깁니다.“그런데 이곳에는 대학이 없는데, 왜 대학로일까?”지금의 대학로는 마로니에공원과 수많은 소극장,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등이 모여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거리입니다.하지만 처음부터 문화예술의 거리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출발점에는 실제로 서울대학교가 있었습니다.1. 대학로에는 정말 대학이 있었다대학로 일대인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는 과거 서울대학교의 여러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특히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 등을 비롯해 서울대학교의 주요 시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 일대는 학생과 지식인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대학가였습니다.그래서 지금의 대학로는 단순히 이름만 대학로인 것이..

서울탐방 2026.09.16

서울, 서촌에는 왜 천재들이 살았을까?

서울, 서촌에는 왜 천재들이 살았을까?겸재 정선부터 이상·윤동주·이상범·박노수까지,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 걷는 서촌 이야기서울 한복판에 이상한 동네가 있습니다.골목 하나를 지나면 화가의 흔적이 나오고,또 다른 골목을 걸으면 시인의 집터가 나타납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이 머물렀던 곳. 도대체 왜 서촌에는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모였을까요?1. 서촌은 원래 어떤 동네였을까?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서촌'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옛날에는 장의동·장동 등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마을입니다. 특히 북촌이 권세 있는 양반들의 거주지로 알려졌다면, 서촌에는 역관·의관 등 전문직에 종사..

서울탐방 2026.09.15

서울, 정릉이 여기가 아니었어 ?

정릉이 여기가 아니었어?신덕왕후의 왕릉에서 나운규의 아리랑, 그리고 이중섭과 최만린까지.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대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온 서울 성북구 정릉을 걸어봅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을 떠올리면 대부분 조선왕릉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주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지금의 정릉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들어진 장소는 현재의 성북구 정릉이 아니라 서울 중구 정동 일대였습니다.그리고 1409년, 정릉은 지금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겨졌습니다. 현재 서울시가 소개하는 정릉의 역사에서도 이 이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 정릉 역사 자료 보기 1. 정릉은 처음부터 ..

서울탐방 2026.09.14

서울 동물원이 왜 과천으로 ?

서울동물원이 왜 과천으로 갔을까?창경궁에서 서울대공원까지 이어진 100년의 이야기지금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서울동물원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곳에 동물원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하지만 서울동물원의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의 장소가 등장합니다.서울동물원의 시작은 과천이 아니라서울의 궁궐, 창경궁이었습니다.오늘날 창경궁은 조선의 궁궐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공간입니다. 그런데 한때 이곳에는 궁궐의 기능과 전혀 다른 동물원과 식물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1. 창경궁은 어떤 궁궐이었을까?창경궁의 역사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수강궁이 세워졌고, 1483년 성종 때 현재의 창경궁이 창건되었습니다.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궁궐의 동쪽 영역을 이루며 왕실 가족의..

서울탐방 2026.09.13

서울, 천년타임캡슐이 ?

서울 한복판에 2394년에 열리는 타임캡슐이 있다?조선의 청학동에서 군사시설을 거쳐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남산골한옥마을. 그리고 그곳에는 미래의 서울을 위해 묻어둔 특별한 시간이 있습니다.서울천년타임캡슐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해 서울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600점의 물품을 담아 매설했습니다.개봉 예정일 : 2394년 11월 29일목차남산골한옥마을은 어떤 곳일까?조선시대 필동, 청학동청학지와 천우각남산골한옥마을의 다섯 전통가옥일제강점기와 남산의 변화군사시설이 자리했던 남산골남산 제모습찾기와 한옥마을의 탄생서울천년타임캡슐2394년, 미래의 서울을 기다리는 타임캡슐마치며01. 남산골한옥마을은 어떤 곳일까?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 중구 필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통한옥과 정원, 연못..

서울탐방 2026.09.12

서울에 무릉도원 ?

부암동, 서울의 무릉도원조선시대의 자연과 문화, 오늘의 예술과 산책이 만나는 동네 서울 한복판에 이런 풍경이 있을까?북악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길, 숲과 계곡, 오래된 정자와 별서의 흔적.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미술관과 문화공간. 오늘날 부암동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산책과 문화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의 매력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답다는 데 있지 않다. 부암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자연과 문화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서울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넓어지며 오래된 풍경은 조금씩 사라진다. 그런데 북악산 자락의 부암동에 들어서면 도시의 속도가 잠시 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높은 산과 계곡, 경사진 골목, 오래된 주택과 현대적인 문화공간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

서울탐방 2026.09.11

서울, 연세대학교가 궁궐 ?

SEOUL HISTORY · YEONHUIDONG연희동, 왕실의 궁에서서울의 문화마을이 되기까지연희궁 · 농촌마을 · 도시개발 · 부촌 · 대학가 · 화교문화 · 연희맛길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은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동네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이궁인 연희궁이 자리했던 곳으로 알려졌고, 이후 농촌과 교외의 풍경을 거쳐 근현대 도시로 변했다.오늘날에는 연세대학교와 가까운 대학가 생활권, 오래된 단독주택이 남아 있는 주거지, 중국음식점과 화교문화가 이어지는 거리,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선 문화거리의 모습까지 한 동네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한다.연희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왕실의 흔적에서 시작해 농촌과 도시개발을 지나 오늘날의 주거·교육·문화공간으로 변해온 서울의 시간여행 같은 동..

서울탐방 2026.09.10

서울, 홍대의 시작은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SEOUL HISTORY · HONGDAE서울, 홍대의 시작은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양화나루 · 잔다리마을 · 철길 · 발전소 · 홍익대학교 · 미술과 음악오늘의 홍대가 만들어지기까지, 한 동네에 쌓인 시간의 기록지금의 홍대를 떠올리면 젊음, 예술, 음악, 카페와 상점이 먼저 생각납니다. 하지만 이곳의 시작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납니다.오늘날 홍대라고 부르는 서교동·동교동·상수동 일대는 오랫동안 한강과 도심을 연결하는 길목이었습니다. 특히 양화나루로 이어지는 길이 이 지역을 지나갔고, 작은 다리가 많았던 '잔다리마을'이라는 농촌적 지명도 남아 있었습니다.이후 철도가 놓이고 발전소가 들어서며 도시화가 시작됐고, 1955년 홍익대학교가 상수동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또 한 번 지..

서울탐방 2026.09.09

서울, 한강 위에 잔디밭 ?

한강 위에 배를 띄우고 흙과 잔디를 깔았다조선의 배다리, 그 모든 역사서울의 사라진 풍경 | 정조의 한강 도강과 조선의 주교(舟橋) 조선시대 한강에는 지금과 같은 다리가 없었습니다.그렇다면 왕이 수많은 신하와 군사, 백성, 말과 물자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야 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요?조선은 놀라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강 위에 여러 척의 배를 나란히 띄우고 서로 연결한 뒤, 그 위에 나무판자를 깔고 흙을 채우고 잔디까지 입혀 하나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다리, 즉 주교(舟橋)입니다.1. 배다리란 무엇인가?배다리는 한자로 주교(舟橋)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배를 이용하여 만든 다리입니다.강에 여러 척의 배를 띄운 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서로 단단하게 연결하여 하나의 구조물처럼 만든 것입..

서울탐방 202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