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탐방

서울, 홍대의 시작은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스테이 코리아 2026. 9. 9. 17:07
SEOUL HISTORY · HONGDAE

서울, 홍대의 시작은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양화나루 · 잔다리마을 · 철길 · 발전소 · 홍익대학교 · 미술과 음악
오늘의 홍대가 만들어지기까지, 한 동네에 쌓인 시간의 기록

지금의 홍대를 떠올리면 젊음, 예술, 음악, 카페와 상점이 먼저 생각납니다. 하지만 이곳의 시작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홍대라고 부르는 서교동·동교동·상수동 일대는 오랫동안 한강과 도심을 연결하는 길목이었습니다. 특히 양화나루로 이어지는 길이 이 지역을 지나갔고, 작은 다리가 많았던 '잔다리마을'이라는 농촌적 지명도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철도가 놓이고 발전소가 들어서며 도시화가 시작됐고, 1955년 홍익대학교가 상수동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또 한 번 지역의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작업실 문화와 젊은 예술문화가 성장하면서 오늘날의 '홍대'가 탄생하게 됩니다.

1. 홍대가 있기 전,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홍대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훨씬 전, 지금의 홍대 일대는 도시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연희동 방향에서 흘러내려오던 물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작은 다리가 놓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이 작은 다리 때문에 이 일대에는 '잔다리'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특히 서교동은 옛날의 서쪽 잔다리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설명됩니다. 동쪽 잔다리는 동세교, 서쪽 잔다리는 서세교로 불렸고, 이것이 훗날 동교동과 서교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습니다.

📌 '홍대'보다 먼저 존재했던 이름

홍대라는 이름은 홍익대학교에서 비롯됐지만, 서교동과 동교동이라는 지명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역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홍대는 대학 이름 하나가 만든 공간이라기보다 오래된 마을과 교통로 위에 대학과 예술문화가 겹쳐진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양화나루로 가는 길목

조선시대 한강에는 여러 나루가 있었고, 양화나루는 서울 서쪽의 중요한 교통 거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양화진 일대는 한강을 건너는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장소였으며, 한강 남쪽과 도성 주변을 연결하는 길목이었습니다.

당시 지금의 홍대 일대는 양화나루 자체라기보다는 양화나루로 가는 길목에 가까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홍대의 시작은 나루터였다'라는 표현은 홍대가 옛 양화나루터 위에 세워졌다는 의미보다는, 이 지역이 한강 나루와 도성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한강 → 양화나루 → 잔다리 → 도성

한강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의 흐름은 양화나루를 거쳐 육지로 이어졌고, 그 길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서교동 일대를 통과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홍대 거리 역시 이렇게 오래된 이동의 역사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3. 잔다리마을과 농촌 풍경

지금은 건물과 상점, 카페와 공연장이 가득하지만 과거 이 일대에는 농촌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연희동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작은 다리, 논과 밭, 마을길이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홍대 일대를 현재의 홍대거리와 겹쳐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시 이곳은 오늘날처럼 독립적인 상업 중심지가 아니라 한강과 서쪽 도성 주변을 연결하는 농촌·교통 공간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4. 이름도 변했다 — 동세교와 서세교에서 동교동·서교동으로

근대에 들어 행정구역이 변화하면서 오래된 마을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1936년 경성부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동세교리는 동교정, 서세교리는 서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광복 이후인 1946년에는 일본식 행정명칭인 '정'이 '동'으로 바뀌면서 동교정과 서교정은 각각 동교동과 서교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잔다리마을
동세교 · 서세교
동교정 · 서교정
동교동 · 서교동

5. 나루터의 시대에서 철도의 시대로

홍대 일대의 성격을 크게 바꾼 것은 근대 교통망의 등장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철도가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공간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에는 당인리선이 개통되었습니다. 이 철도는 당인리화력발전소에 필요한 무연탄을 운반하기 위한 화물철도였지만 여객 운송도 이루어졌습니다. 당인리선은 서강 일대와 당인리를 연결하면서 지금의 홍대 주변에도 새로운 이동축을 만들어냈습니다.

HISTORY OF TRANSPORTATION

나루터 → 철길 → 도로 → 지하철

홍대의 역사를 보면 교통수단이 바뀔 때마다 공간의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한강을 이용하던 시대에서 철도의 시대로, 다시 도로와 대중교통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홍대는 점점 서울 서부의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변해갔습니다.

6. 발전소와 방송소, 근대 도시가 시작되다

당인리선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인리화력발전소가 있었습니다. 발전소와 철도는 주변 지역의 도시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시설이었습니다. 여기에 방송 관련 시설까지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더 이상 전통적인 농촌마을에 머물지 않고 근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철길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만들어냈고, 그 주변에 도로와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오늘날 홍대의 공간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7. 1955년, 홍익대학교가 마포로 들어오다

오늘날 홍대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바로 1955년 홍익대학교의 상수동 이전입니다.

홍익대학교는 1946년 홍문대학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교사를 옮겼으며, 1955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이때부터 이 지역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생활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성장과 함께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 작가, 작업실, 화방 등이 주변에 모이면서 다른 대학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8. 미술대학이 만든 '홍대 앞'의 분위기

1970년대부터 홍대 앞에는 미술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작업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실과 화방, 작은 작업공간 등이 자리하면서 거리 자체가 하나의 예술공간처럼 변해갔습니다.

이것은 홍대가 단순한 대학가에서 독특한 문화지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술을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계속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홍대의 특별함은 '예술이 일상에 들어온 것'

홍대의 특징은 미술관 안에서만 예술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골목과 작업실, 카페와 상점, 공연장과 거리로 예술이 확장됐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훗날 음악과 공연문화가 결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9. 1980~1990년대, 젊은 문화가 모이기 시작하다

1980년대 이후 홍대 주변에는 미술과 디자인 관련 공간이 더욱 늘어나고, 젊은 층이 모이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음악과 공연문화가 결합하면서 홍대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라이브 공연장과 클럽, 카페, 화방, 작업실 등이 골목 곳곳에 들어섰고 인디음악과 독립문화가 성장했습니다. 홍대의 이름이 단순히 '홍익대학교 주변'을 뜻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브랜드가 된 것도 이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 철길은 사라졌지만 길의 기억은 남았다

당인리선은 도로교통의 발달과 여객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여객 운송이 중단됐고, 이후 당인리발전소의 연료 전환과 함께 철도 기능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철길이 없어졌다고 그 흔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홍대의 일부 거리에는 과거 당인리선의 선형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구조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 아래에는 나루터와 철길, 발전소와 도시화의 시간이 겹쳐 있는 것입니다.

11. 홍대는 어떻게 거대한 상권이 되었을까?

1990년대 이후 홍대의 문화적 인지도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카페와 음식점, 패션매장, 공연장, 클럽 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증가했습니다.

이후 홍대입구역을 중심으로 한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지고 주변 지역까지 상권이 확장되면서 오늘날의 거대한 홍대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상권의 성장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초기 홍대의 독립적인 예술공간과 작은 작업실들이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홍대는 이제 예술가의 거리인 동시에 거대한 소비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2. 한눈에 보는 홍대의 역사

조선시대

한강의 양화나루로 이어지는 길목. 농촌마을과 작은 다리가 있던 지역.

근대 이전

동세교·서세교 등 '잔다리'와 관련된 지명이 형성됨.

1930년대

경성부 편입과 철도·발전소 등 근대 시설의 등장으로 도시화가 진행됨.

1946년

동교정·서교정이 동교동·서교동으로 바뀜.

1955년

홍익대학교가 마포구 상수동 현재 위치로 이전.

1970년대

미술대학 학생들의 작업실 문화가 성장하면서 홍대 특유의 예술적 분위기 형성.

1980~1990년대

미술·음악·공연문화가 결합하며 젊은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

2000년대 이후

홍대입구역과 주변 상권의 확장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상업지역으로 성장.

13. 오늘 홍대에서 과거를 걷다

지금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과거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화려한 간판과 카페, 공연장, 패션매장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곳이 한때 작은 다리와 논밭이 있던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홍대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한강의 나루 → 양화나루로 이어지는 길 → 잔다리마을 → 철길 → 발전소 → 대학 → 미술 → 음악 → 홍대

홍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거리가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던 길 위에 근대 교통시설이 들어서고, 대학과 예술가들이 모이고, 음악과 젊은 문화가 더해지면서 만들어진 서울의 독특한 도시문화 공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홍대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젊음의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한강의 나루터에서 시작해 서울의 예술과 문화가 만들어진 시간을 걷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료를 확인하며 정리한 주요 역사적 근거

서울역사아카이브 홍대 지역 자료, 홍익대학교 공식 연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마포구·홍익대학교 자료, 서울연구원 자료 및 당인리선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별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 '홍대의 시작은 나루터였다'라는 제목은 홍대 지역이 옛 양화나루터 자체였다는 뜻이 아니라, 양화나루와 연결된 교통로 및 한강 생활권에서 출발해 철도·대학·예술문화가 차례로 더해졌다는 역사적 흐름을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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