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탐방

서울, 성북동의 비밀

스테이 코리아 2026. 9. 7. 19:30
서울 성북동의 현재 모습

성북동의 비밀

조선의 제례 공간에서 문인과 예술가의 동네,
그리고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 되기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성북동. 북악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고급 주택과 오래된 돌담길 때문에 오늘날에는 ‘부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성북동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북동은 처음부터 부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국가 제례의 공간이었고, 근현대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으며, 아랫동네에는 오래된 서민 주거지가, 윗동네에는 대저택과 대사관저가 들어서면서 서로 다른 풍경이 공존하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성북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조선의 시간과 근현대 문화, 서민의 삶과 부촌의 풍경이 한 동네에
성북동 한양도성과 북악산

1. 성북동이라는 이름에는 뜻이 있다

성북동의 한자는 城北洞. 말 그대로 ‘성(城)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에 위치했던 성북동은 도성과 북악산 사이에 자리한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서울의 중심지와 가까운 주거지역이라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성북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옛 서울의 공간 구조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성북동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2. 조선시대 성북동에는 왕실의 제례 공간이 있었다

성북동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가 선잠단지입니다.

선잠단은 누에를 치고 비단을 생산하는 양잠과 관련된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국가 제례 공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농업뿐 아니라 양잠 역시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잠단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시 모습을 보여줄 때는 현대 사진을 ‘조선시대 사진’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궤와 기록화, 복원 자료 등을 활용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친잠례 의궤 기록화

1767년 영조 때에는 왕실의 친잠례가 거행되었고, 이를 기록한 의궤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시대 왕실이 양잠을 어떻게 장려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현재 서울 성북동 선잠단지

3. 성북동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성북동은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북악산과 계곡의 자연환경을 가까이 두면서도 도심과 멀지 않았던 성북동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머물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만해 한용운입니다. 한용운은 성북동의 심우장에서 생활하며 문학과 독립운동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만해 한용운과 성북동 심우장

성북동에는 소설가 이태준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수연산방은 성북동이 문인들의 삶과 창작이 이루어졌던 문화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태준 수연산방 성북동

4. 간송 전형필이 성북동에 남긴 것

성북동의 문화예술사를 이야기할 때 간송 전형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키는 데 힘썼으며, 성북동에 보화각을 세웠습니다. 이 공간은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북동에는 독립운동가와 문인뿐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역사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1938년 성북동 보화각 옛 모습

5. 성북동에는 서로 다른 두 풍경이 있었다

오늘날 성북동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부촌’입니다. 하지만 성북동 전체가 처음부터 부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북동에서는 흔히 아랫동네와 윗동네라는 공간적 구분이 이야기됩니다. 아랫동네에는 오래된 주거지와 생활공간이 자리했고, 그 모습을 대표하는 곳이 북정마을입니다.

 

성북동 북정마을 옛 모습

반면 북악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윗동네에는 넓은 대지를 가진 단독주택과 대저택, 대사관저 등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발전했습니다.

 

성북동 윗동네 고급주택가

6. 1960~70년대, 성북동은 부촌으로 변했다

성북동 윗동네의 부촌화는 1960~70년대 더욱 뚜렷해집니다. 청와대와 가까운 지리적 조건과 북악산의 자연환경, 그리고 도로와 교통 여건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 결과 정치권 인사와 기업인, 자산가 등이 자리 잡으면서 성북동 윗동네는 서울의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역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1970년대 성북동 고급주택가

7. 삼청각, 성북동 현대사의 한 장면

성북동의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삼청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적 풍경과 연결되는 장소로, 성북동이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이 오갔던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성북동 삼청각 옛 모습

8.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 성북동의 가장 놀라운 변화

성북동의 공간 변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가 대원각에서 길상사로의 변화입니다.

현재 길상사가 자리한 곳은 과거 유명한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후 이 공간이 사찰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길상사가 되었습니다.

요정에서 사찰로. 하나의 공간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9. 오늘날 성북동을 걸으면

오늘날 성북동을 걷다 보면 한 동네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양도성의 흔적을 따라 걷고, 선잠단지를 지나고, 심우장과 수연산방을 만나고, 간송의 문화유산을 지나 북악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대저택과 대사관저가 이어집니다.

반대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북정마을의 좁은 골목과 오래된 주거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북동은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하기 어려운 동네입니다. 왕실의 제례, 독립운동, 문학, 미술, 서민들의 삶, 부촌의 역사까지 한 공간 안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성북동 거리와 북악산 풍경

  

성북동의 진짜 비밀

성북동의 비밀은 하나의 장소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선잠단에서 시작해
문인과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고
북정마을과 부촌이 공존하는 동네가 되었으며
대원각은 길상사로 변했습니다.

성북동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동네를 걷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길을 걷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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