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탐방

청계천은 왜 덮었다가다시 살렸을까?

스테이 코리아 2026. 8. 21. 02:32
서울의 놀라운 과거

청계천은 왜 덮었다가
다시 살렸을까?

600년 서울의 물길이 도로 아래 묻혔다가 다시 시민에게 돌아오기까지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지금은 물이 흐르고 산책로가 이어지며, 밤이면 아름다운 조명이 물에 반사되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 명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청계천은 한때 도로 아래에 묻혀 있었습니다.”

📌 이 글에서 알아볼 이야기

① 청계천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② 복개 전 청계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③ 왜 청계천을 덮었을까?

④ 청계고가도로는 왜 만들어졌을까?

⑤ 광통교에는 왜 왕릉의 석재가 있을까?

⑥ 왜 다시 청계천을 복원했을까?

⑦ 지금의 청계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 청계천은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조선시대부터 한양도성 안을 흐르며 서울 사람들의 생활과 함께해 왔습니다.

청계천은 하나의 샘에서 시작되는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 등 서울 도심의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여러 물줄기가 모여 형성된 하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청계천은 복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도심 하천으로, 현재의 유지용수는 별도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자연적인 물길과 현재의 청계천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복개되기 전 청계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시대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을 이용했고, 빨래를 하기도 했으며, 청계천 주변에는 다양한 생활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청계천 주변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밀집했고, 생활하수와 쓰레기가 유입되면서 악취와 오염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청계천은 오늘날의 아름다운 산책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3. 그래서 청계천을 덮었습니다

1958년, 본격적인 복개가 시작됩니다.

당시 청계천 복개에는 위생과 환경 개선뿐 아니라 도시 정비와 도로 확보라는 목적도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자동차가 늘면서 새로운 도로가 필요했습니다.

청계천을 복개하면 하천 위를 도로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청계천은 구간별로 복개되기 시작했고, 그 위에는 서울의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4. 그리고 청계고가도로가 등장했습니다

복개된 청계천 위로 도로가 만들어졌고, 이후 청계고가도로까지 건설되면서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자동차 중심 공간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와 도로가 산업화와 도시 발전을 상징했습니다. 지금과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물길을 덮어 도로를 만들었던 서울
그것이 당시에는 발전의 모습이었습니다.

5. 그런데 청계천에는 왕릉의 돌이 있습니다

청계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광통교입니다.

광통교에는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 정릉과 관련된 석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종 때 정릉을 옮기는 과정에서 옛 능역의 석재 일부를 가져와 광통교를 축조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600년 전의 돌이 지금도 서울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청계천의 다리 하나에도 조선 왕실의 역사와 서울의 도시 변화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6. 그런데 왜 다시 물길을 되살렸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의 가치와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청계고가도로와 복개 구조물은 노후화됐고, 안전 문제와 도시환경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사람과 보행자,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도시로 서울의 정책 방향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로
도시의 가치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7. 2005년, 청계천이 다시 시민에게 돌아왔습니다

2003년 시작된 복원사업은 2005년 마무리됐고, 2005년 10월 1일 청계천이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됐습니다.

오랫동안 도로 아래 묻혀 있던 물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지금의 청계천에는 물이 흐르고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시민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고, 계절마다 다른 자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8. 그리고 청계천의 밤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낮의 청계천이 자연과 산책의 공간이라면, 밤의 청계천은 조명과 물빛이 어우러지는 또 다른 서울을 보여줍니다.

다리와 주변 건축물의 불빛이 물에 반사되면서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특별한 야경이 만들어집니다.

한때는 덮어야 했던 물길
지금은 서울의 밤을 밝히는 물길이 되었습니다.

서울은 왜 청계천을 덮었다가 다시 살렸을까?

청계천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대에 따라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위생과 도시 정비, 도로와 자동차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물길을 덮고 그 위에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과 환경, 보행과 휴식, 역사와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길을 되살렸습니다.

서울의 도시는 계속 변하지만
물길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계천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 청계천 역사 한눈에 보기

시기 주요 변화
조선시대 한양도성 안을 흐르던 생활의 물길
1950년대 판잣집·오염·악취 등 도시환경 문제 심화
1958년 청계천 본격적인 복개공사 시작
1960~70년대 도로와 청계고가도로가 들어선 자동차 중심 공간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 시작
2005년 청계천 복원 완료 및 시민 개방
현재 도심 속 산책·문화·휴식 공간으로 활용
여러분은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중
어느 모습이 더 놀라웠나요?

우리가 매일 걷는 서울의 거리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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