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100년 역사|공동묘지에서 세계의 거리까지
지금은 세계 각국의 음식과 문화가 모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국제거리 이태원. 하지만 100년 전 이곳의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공동묘지와 농촌적 풍경, 군사기지, 미군 중심의 상권을 거쳐 오늘날의 다문화 거리로 변화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이태원 → 근대의 용산·군사기지 → 이태원 공동묘지 → 해방 이후 미군 주둔 → 1970~80년대 외국인 상권 → 1990년대 다문화 공간 → 관광특구 → 오늘날의 세계문화 거리
1.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오늘날의 이태원 거리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원(院)이 있었고, 이곳이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지만, 과거의 이태원이라는 지명이 가리키는 공간과 현재의 행정구역은 서로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태원의 역사를 이해할 때는 지명의 역사와 공간의 역사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
이태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국제적인 이태원 거리’의 모습은 훨씬 뒤에 형성되었습니다.
2. 근대가 시작되면서 이태원의 주변 풍경이 바뀌다
19세기 말부터 서울과 용산 일대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철도와 근대 교통시설이 들어서고 외국 세력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용산 일대는 서울의 중요한 군사·교통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일본군의 주둔과 용산 일대의 군사기지화는 이태원의 공간적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태원은 단순한 서울 외곽의 마을이 아니라 군사시설과 도시가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3. 이태원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가장 놀라운 이태원의 과거
오늘날 고층 건물과 상점, 음식점이 들어선 이태원 일대에는 과거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태원 일대에는 상당한 규모의 공동묘지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도시가 지금처럼 빽빽하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성 주변과 외곽 지역에는 여러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태원 공동묘지는 도시가 확장되면서 점차 정리 대상이 되었고, 묘역의 이장과 도시 개발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이태원이 묘지와 주변 농촌 경관이 존재하던 공간에서 주거와 상업지역으로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이태원 공동묘지와 관련된 자료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남아 있는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입니다. 이 비석은 과거 이태원 공동묘지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4. 유관순 열사와 이태원 공동묘지
이태원 공동묘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뒤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태원 공동묘지가 정리되고 묘역이 이장되는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유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서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공간을 이해할 때는 실제 유해가 확인된 묘와 추모를 위한 공간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이태원에서 공동묘지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망우리에는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가 남아 있어 사라진 이태원 공동묘지의 존재를 기억하게 합니다.
5.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미군 주둔
1945년 광복과 한국전쟁은 이태원의 성격을 다시 크게 바꾸었습니다. 특히 용산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태원은 미군과 외국인을 상대하는 상업공간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점, 의류점, 양복점, 기념품점, 클럽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업종이 생겨났고, 이태원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상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태원은 단순한 주거지역이 아니라 한국인과 외국인이 만나는 접점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6. 1970년대 — 외국인 상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다
1970년대 이태원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유흥시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외국인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의류와 가죽제품 등 패션 관련 상품은 이태원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었습니다. 외국인의 체형과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들도 유명해졌습니다.
이 시기의 이태원은 오늘날처럼 세련된 관광거리는 아니었습니다. 낮은 건물과 좁은 골목, 상점 간판이 이어지는 거리였지만, 다른 서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외국어 간판과 외국인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7. 1980년대 — 서울올림픽이 이태원을 바꾸다
1980년대는 이태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입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이태원은 국제적인 관광·쇼핑 공간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태원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의류와 가죽제품, 기념품,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태원의 변화
- 외국인 관광객 증가
- 쇼핑 상권 확대
- 영어 등 외국어 간판 증가
- 국제적인 음식점과 유흥시설 증가
-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8. 1990년대 — 미군 중심에서 다문화 공간으로
1990년대 이후 이태원의 모습은 또 한 번 달라졌습니다. 이태원에 정착하는 외국인의 국적과 배경이 다양해지면서 이곳은 더 이상 미국 문화만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태원에 모이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점과 상점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이태원의 핵심적인 특징인 다문화성과 국제성을 만들어낸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9. 1997년 — 서울 최초의 관광특구
이태원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는 1997년 관광특구 지정입니다.
이태원은 서울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단순한 외국인 대상 상권을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공식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태원의 정체성이 ‘미군 주변 상권’에서 ‘국제 관광지’로 확대되는 과정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 2000년대 — 서울 속 작은 세계
2000년대 이태원은 더욱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계 각국의 음식점과 식료품점, 의류점, 종교시설 등이 모이면서 서울 안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공존하면서 이태원은 서울의 대표적인 다문화 공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태원의 특징은 단순히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지역 안에서 만나고 공존한다는 점에 이태원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11. 경리단길과 한남동, 새로운 이태원의 등장
2010년대에는 이태원 주변으로 새로운 상권이 확대되었습니다. 경리단길과 한남동 일대에는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 편집숍 등이 들어서면서 이태원은 기존의 외국인 상권과 새로운 문화·상업공간이 결합하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같은 이태원권역 안에서도 지역마다 분위기가 달라졌고, 관광객뿐만 아니라 젊은 서울 시민들이 찾는 문화공간으로도 성장했습니다.

12. 2020년대 — 변화하는 이태원
코로나19는 이태원 상권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과 유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일부 상권이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관광과 상업 활동이 회복되면서 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한편 용산 일대의 도시개발과 주거환경 변화도 이태원의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이태원은 오래된 골목과 다문화 상권, 새로운 주거·상업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복합적인 도시공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13. 공동묘지에서 세계의 거리까지
이태원의 100년 역사는 단순한 한 동네의 변화가 아닙니다. 서울이 농촌과 도시가 섞인 공간에서 거대한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이 이 작은 지역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공동묘지가 있던 공간이 사라지고 도시가 들어섰으며, 군사기지 주변에서 외국인 상권이 성장했고, 국제행사를 거치면서 관광지가 되었으며,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공동묘지에서 세계의 거리까지
100년 전의 이태원과 오늘의 이태원은 같은 장소이지만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그 변화 자체가 이태원의 역사입니다.
참고할 만한 역사 자료
서울역사박물관·서울역사아카이브의 이태원 관련 조사자료, 국가유산·문화유산 관련 자료,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의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관련 자료 등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 과거 공동묘지의 정확한 범위와 유관순 열사의 묘지·유해와 관련된 내용은 자료마다 표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과 추정·해석을 구분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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