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이 여기가 아니었어?
신덕왕후의 왕릉에서 나운규의 아리랑, 그리고 이중섭과 최만린까지.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대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온 서울 성북구 정릉을 걸어봅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을 떠올리면 대부분 조선왕릉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주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지금의 정릉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들어진 장소는 현재의 성북구 정릉이 아니라 서울 중구 정동 일대였습니다.
그리고 1409년, 정릉은 지금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겨졌습니다. 현재 서울시가 소개하는 정릉의 역사에서도 이 이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 정릉 역사 자료 보기
1. 정릉은 처음부터 성북구에 있었을까?
1396년 신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왕비의 능을 당시 한성부의 황화방, 현재의 서울 중구 정동 일대에 조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동’이라는 지명 역시 옛 정릉과 연결된 역사적 흔적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조가 세상을 떠난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뒤 정릉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1409년, 정릉은 성북구로 이동하다
1409년 정릉은 당시의 사을한 지역으로 옮겨졌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북구 정릉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정릉은 처음 정동에 조성되었다가 140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1669년 신덕왕후가 왕후로 복위되면서 다시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2. 그런데 정릉의 돌이 광통교에 있다고?
정릉의 이전 과정에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 정릉에 있던 일부 석물은 이후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광통교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릉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석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왕릉 하나가 이동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조선 초기 권력의 변화가 도시 공간과 건축물에까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장소를 걷다 보면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정동과 정릉, 그리고 광통교가 사실 하나의 역사적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260여 년 뒤, 다시 왕릉의 모습을 찾다
정릉은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669년 현종 때 신덕왕후가 복위되면서 정릉도 다시 왕후의 능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정릉은 바로 이러한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공간입니다.
4. 정릉에는 왜 ‘아리랑’이 등장할까?
정릉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정릉은 또 다른 문화적 기억을 갖게 됩니다.
바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입니다.
1926년 만들어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정릉과 연결되는 장소가 바로 아리랑고개입니다.

오늘날 정릉 일대에는 정릉아리랑시장이라는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왕릉의 역사에 영화와 대중문화의 기억까지 더해진 것입니다.
5. 1950년대, 정릉은 예술가들의 동네가 되다
정릉의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장면은 1950년대에 펼쳐집니다.
전쟁 이후 서울 곳곳에서 새로운 예술의 흐름이 만들어지던 시기, 정릉에는 여러 예술가와 문인들이 머물렀습니다.
박고석, 한묵, 이중섭 등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흔적이 정릉과 연결됩니다.

이때 정릉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전쟁 이후 새로운 삶과 예술을 모색하던 사람들이 머물던 공간이었습니다.
6. 그리고 이곳에 이중섭이 살았습니다
정릉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에 따르면 이중섭은 1956년 서울 정릉 골짜기에서 친구인 작가 한묵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이중섭은 〈정릉 풍경〉을 남겼습니다.

〈정릉 풍경〉은 1956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종이에 연필·크레용·유화 물감을 사용했으며 크기는 43.5×29.3cm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품 페이지에서 작품 정보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바라보면 정릉은 단순히 ‘이중섭이 살았던 곳’이라는 설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화가가 마지막 시기에 바라본 서울의 한 동네가 그의 작품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7. 이중섭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정릉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현대 추상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최만린입니다.
최만린은 오랜 기간 정릉에서 생활하며 작업했고, 그가 살던 집은 현재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을 함께 놓고 보면 정릉이라는 공간이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자연과 풍경을 바라보며 그림을 남긴 공간
최만린의 정릉
조각과 추상미술을 탐구하며 오랜 시간 작업한 공간
서로 다른 세대와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의 작가들이 하나의 동네를 삶과 작업의 공간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정릉의 문화적 가치가 드러납니다.
8. 오늘의 정릉은 어떤 곳일까?
오늘날의 정릉에는 왕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릉, 정릉천, 정릉시장, 정릉아리랑시장, 아리랑고개, 북한산 자락, 사찰과 미술관 등이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이어집니다.

왕릉을 찾는 사람, 시장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 정릉천을 산책하는 사람,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오는 사람까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동네를 공유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정릉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9. 정릉의 시간을 한눈에 보면
1396년
신덕왕후의 능이 현재의 서울 중구 정동 일대에 처음 조성됩니다.
1409년
정릉이 현재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겨집니다.
1410년 전후
옛 정릉의 석물 일부가 광통교 보수에 활용됩니다.
1669년
신덕왕후가 복위되면서 정릉이 다시 왕릉으로 정비됩니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과 아리랑고개가 정릉 일대의 문화적 기억으로 남습니다.
1950년대
박고석, 한묵, 이중섭 등 예술가들의 활동과 정릉의 인연이 이어집니다.
1956년
이중섭이 정릉에서 생활하며 〈정릉 풍경〉을 남깁니다.
현대
최만린의 옛집이 미술관으로 남고, 정릉은 역사·예술·시장·생활문화가 공존하는 동네가 됩니다.
정릉은 ‘왕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곳
정릉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보입니다.
한 장소의 가치는 건물 하나나 문화유산 하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선의 왕릉이 있었고, 그 왕릉은 다른 장소에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영화 〈아리랑〉의 기억이 쌓였고, 1950년대에는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중섭은 정릉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고, 최만린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장과 정릉천, 산책로와 문화공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이 동네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왕릉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오늘의 생활공간으로.
정릉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머물고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온 동네입니다.
사람이 찾고, 머물고,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꿈꾸며.
오늘은 서울 정릉을 걸어봅니다.
참고한 주요 자료
- 서울시, 「신덕고황후의 능, 정릉(貞陵)」
- 서울시, 「신덕왕후의 사연 깃든 정릉, 겨울숲 산책도 강추!」
-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정릉 풍경〉 소장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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