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밤섬에 사람이 살았어 ?
사람이 살던 섬은 왜 폭파됐고,
어떻게 다시 서울의 생태섬이 되었을까?
서울 한강 한가운데, 여의도와 마포 사이에 유난히 숲이 울창한 섬이 있습니다. 바로 밤섬입니다.
지금은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도심 속 자연섬이지만,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고, 뽕나무와 채소를 키우며 살아가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1968년 2월 10일, 밤섬은 한강 개발을 위해 폭파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라진 섬은 수십 년 뒤 자연의 힘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 밤섬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밤섬의 옛 이름은 율도(栗島)였습니다. '밤 율(栗)'에 '섬 도(島)'를 쓰는 이름입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마포의 와우산에서 내려다본 섬의 모습이 마치 밤알을 닮았다고 해서 '밤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밤섬은 아름다운 모래밭과 버드나무 숲, 맑은 물길을 가진 섬이었고, 과거 마포 지역의 대표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시인과 묵객들이 마포 강변에서 밤섬의 풍경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조선시대의 밤섬과 여의도는 현재처럼 뚜렷하게 분리된 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시 자료에서는 두 섬이 하나의 섬이었다고 설명합니다.
2.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섬
밤섬의 인간 거주 역사는 매우 오래됩니다. 서울시 자료에서는 고려 초기 밤섬이 귀양지로 이용되었다고 전하며,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한양 천도 이후로 설명합니다.
특히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진 뒤 밤섬에는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강을 이용하는 배가 많았던 시대였던 만큼 밤섬은 자연스럽게 조선업과 수운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밤섬에는 조선소가 있었고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살았습니다. 주민들은 한강에서 고기를 잡거나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도선업에도 종사했습니다.

3. 밤섬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밤섬은 단순한 어촌이 아니었습니다. 섬 안의 비옥한 땅을 이용해 다양한 농업도 이루어졌습니다.
- 조선업 – 배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 도선업 – 한강을 건너는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습니다.
- 어업 –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 뽕나무 재배 – 밤섬은 뽕나무로도 유명했습니다.
- 채소 농사 – 섬의 비옥한 토지를 이용했습니다.
- 감초 등 약초 재배 – 약초를 재배했습니다.
- 땅콩 재배 – 농작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 염소 방목 – 섬 곳곳에서 가축을 길렀습니다.
- 채빙 – 겨울철 얼음을 채취하기도 했습니다.
즉, 밤섬은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던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4. 밤섬에는 실제로 마을이 있었다
1968년 개발 직전까지 밤섬에는 수십 세대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울시 자료에는 주민 규모가 자료별로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민 규모 기록의 차이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자료에는 62세대 594명으로, 다른 서울시 자료에는 62세대 433명 또는 443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사 시점이나 자료 작성 기준의 차이로 보이며, 공통적으로 1968년 당시 60여 세대가 밤섬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일치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밤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온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5. 밤섬에는 '부군당'도 있었다
밤섬에는 주민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했던 밤섬부군당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부군당제를 지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밤섬 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1968년 밤섬이 사라진 뒤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 일대로 이주했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과 부군당제의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는 현재도 옛 밤섬 주민들의 전통을 기억하는 밤섬부군당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6. 1968년, 밤섬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60년대 서울은 급격하게 도시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강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여의도를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개발하는 계획이 추진됐습니다.
밤섬은 이 개발 과정에서 제거 대상이 되었습니다. 서울기록원에 따르면 1968년 밤섬 폭파는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의 일환으로 추진됐으며, 한강의 물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구를 넓히고 개발에 필요한 토사와 석재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2월 10일, 밤섬은 폭파되었습니다.

7. 밤섬에서 나온 흙과 돌은 어디로 갔을까?
폭파와 해체 과정에서 나온 토사와 석재는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제방과 기반시설 공사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즉, 밤섬을 없앤 물질이 당시 서울의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데 다시 사용된 것입니다. 서울의 현대적인 도시개발 역사 속에서 밤섬은 말 그대로 개발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여의도는 서울의 대표적인 현대 도시로 성장했고, 밤섬은 개발을 위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후 자연은 사라진 밤섬을 다시 만들어냈습니다.
8. 폭파된 밤섬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폭파 이후 밤섬은 하나의 큰 섬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섬과 모래·자갈 지형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시작됐습니다. 한강 상류에서 내려온 흙과 모래가 밤섬 주변에 계속 쌓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적인 퇴적작용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퇴적물이 쌓이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면서 밤섬은 조금씩 다시 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1985년 약 17ha였던 밤섬은 2008년 무렵 약 27ha 규모까지 커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9. 자연이 밤섬을 다시 만들었다
사람이 폭파해 없앤 섬을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한강의 물과 퇴적작용, 식물과 생물이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갈대가 자라고 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섬에 식물이 늘어나자 곤충과 물고기가 찾아왔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도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밤섬은 개발의 대상에서 점차 도심 생태계의 중요한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10. 1986년부터 생태섬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다
밤섬이 다시 주목받은 중요한 시점 가운데 하나가 1986년 한강종합개발입니다. 당시 밤섬은 철새가 찾아오는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자연이 회복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1988년에는 갈대, 갯버들, 버들강아지, 찔레 등 여러 식물을 심는 생태 복원 활동도 진행됐습니다.
11. 1999년, 서울 최초의 생태경관보전지역
밤섬의 생태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서울시 최초의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밤섬은 개발하거나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전해야 할 서울의 자연유산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12. 2012년, 서울 최초의 람사르 습지가 되다
밤섬의 역사는 2012년 또 한 번 크게 바뀝니다. 2012년 6월 21일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것입니다. 서울시 최초이자 당시 국내 18번째 람사르 습지였습니다.
람사르 습지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밤섬은 특히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수생·육상 생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고, 철새들이 찾아오는 중요한 서식지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3. 지금 밤섬에는 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까?
밤섬은 노들섬이나 여의도처럼 시민이 자유롭게 들어가 산책하는 섬이 아닙니다. 현재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는 것보다 새와 식물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이 밤섬을 보전하는 데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마포대교나 서강대교 주변, 한강변의 전망 공간에서는 밤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밤섬생태체험관 등을 통해 밤섬의 역사와 생태를 접할 수 있습니다.
14. 지금 밤섬은 어떤 곳일까?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밤섬의 면적은 약 279,281㎡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밤섬에는 갈대와 버드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수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도심 속 중요한 생태 공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에 사람의 손길이 최소화된 자연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밤섬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갖습니다.

15. 밤섬의 역사는 '파괴와 복원'의 역사다
귀양지
조선업·어업
폭파·이주
생태보전지역
람사르 습지
밤섬의 역사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자연이 다시 만든 섬 → 서울의 생태섬
16. 밤섬이 우리에게 남긴 것
밤섬의 역사는 단순한 서울의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1968년 당시에는 여의도 개발을 위한 자재와 한강의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밤섬을 없애는 것이 도시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밤섬은 자연적으로 다시 살아났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서울에서 보호해야 할 중요한 생태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밤섬은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와 생태복원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마무리 | 사라진 섬은 사라지지 않았다
1968년 2월 10일 폭파된 밤섬.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섬을 떠났고, 밤섬의 모습도 한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한강은 계속 흘렀습니다. 강물이 실어 온 흙과 모래가 쌓이고, 그곳에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없앤 섬을 자연이 다시 만들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밤섬은 단순한 무인도가 아닙니다.
그곳에는 한강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
도시개발의 흔적과 자연의 복원력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참고자료
- 서울특별시 미래한강본부 「밤섬 일반현황」
- 서울특별시 미래한강본부 「밤섬의 역사」
- 서울기록원 「밤섬 폭파」, 「밤섬 제거작업」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밤섬 관련 기록
※ 밤섬 주민 수는 서울시 자료에 따라 62세대 433명, 443명, 594명 등 차이가 있어 본문에서 자료 차이를 함께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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